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이우스 마리우스 (문단 편집) === 마리우스의 재등장 - [[동맹시 전쟁]] === 기원전 99년에 마리우스의 6번째 집정관 임기가 끝나자 마리우스는 잊혀진 존재가 된다. 하지만 이후 기원전 91년에 시민권 확대 문제로 불만을 품은 이탈리아의 동맹시들이 로마에 반기를 드는 동맹시 전쟁이 발발하자 마리우스는 기원전 90년도 집정관으로 선출된 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 루푸스의 군사 고문으로 지명된다. 마리우스는 루푸스에게 새로 징집한 신병의 훈련이 부족하므로 전투를 하기 전 훈련을 시켜야 한다고 조언하였으나 루푸스는 이를 무시하고 그들을 이끌고 나간다. 루푸스는 군을 둘로 나눈 뒤 마리우스와 각각 지휘하기로 한다. 루푸스와 마리우스는 각각 다리를 건설해 리리스 강을 건너고자 하였고 이들과 맞선 베티우스 스카토는 루푸스에게 주력 부대가 마리우스 쪽으로 이동한 것처럼 눈속임을 하였다. 이것에 속은 루푸스는 경솔하게 도강하다 스카토군에 포위되어 목숨을 잃는다. 마리우스는 이 둘이 싸우는 동안 텅빈 적의 막사를 공격해 이를 점령한 뒤 패주한 루푸스의 군단과 합류한다. 이렇게 되자 마리우스는 루푸스를 대신하여 군을 지휘하게 되었는데 마리우스 휘하의 로마군은 그해 내내 패배하지 않았고 성공적으로 군사활동을 마친다. 그런데 마리우스는 겨울이 되자 지휘권을 반납하고 로마로 돌아온다. 마리우스가 이렇게 지휘권을 반납한 이유는 불명확한데 그의 건강상의 문제로 그리했다는 가설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